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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제 승진할 수 있을까?

푸딩러 2020. 9. 15. 22:32

나도 일 잘하고 싶어요

 

일본에서 경력직 사원은 흠이 아니다.

외국계 회사인 우리 회사만 해도 경력직 사원이 절반 이상이고 특히 HR은 9할이 경력직 사원이다.

 

연령대는 다양하지만 HR로 보자면 30대 후반~40대 후반이 가장 보편적.

 

하지만 승진은 연공서열이 아니라 성과 중시.

회사에 10년 넘게 있어도 계속 팀원으로만 있는 사람도 있고 입사한 지 한 달만에 승진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언제 승진할 수 있을까?'

하고 싶지 않아도 문득문득 생각해버린다.

영화 <인셉션>처럼 누군가 내 머릿속에 이 생각을 심어둔 것처럼 뭉게뭉게 커져가는 기분이다.

 

학생이었던 나를 돌이켜보면, 나서기를 좋아해 반장은 도맡았지만 막상 잘 해내지는 못했다.

지고 싶지 않다는 욕심, 잘하고 싶다는 욕심으로 공부는 열심히 했고 성적은 그럭저럭 나왔던 것 같다.

 

대학생이 되어서는 몇 번 조별과제는 있었지만 대체로 고학번 선배들이 팀장을 맡은 팀에 배정받는 경우가 많았고 내가 리드한 다기보단 선배들이 시키는 대로 조사를 해가고 자료를 만들었다.

 

어떤 목표를 향해, 스스로 과정을 생각하고 주변 사람들을 설득해 함께 준비해서 성취해낸 경험은, 없다. 

 

주변에 영향력을 끼치고 목표 달성까지 행동하는 능력은 늘 부족하다고 생각해왔다.

반면, 리더가 부탁하는 일을 하거나,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안하거나 '지금 당장'해야 할 근시안적인 일을 처리하는 건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회사원이 되고서도 성향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이런 나도 언젠가 승진할 수 있을까?

 

팀장과 1on1 면담을 하며 내가 다음 직급으로 승진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수준이 되어야 하는지 물어보았더니, 아래 세 가지를 모두 충족하는 수준이 되어야 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1. 미팅에서 발언이 가능한 사람

참석해서 얼굴만 비치는 게 아니라 대화에 참여해 다른 각도에서 생각하고 상대방 발언에 대해 코멘트할 수 있는 정도

 

2. 미팅을 주도하며 자신의 생각을 프레젠테이션 할 수 있는 사람

미팅 사전 자료를 만드는 실력은 물론 자료를 발표하며 해당 미팅을 이끌어갈 수 있는 정도

 

3. 일의 속도가 빠른 사람

보통 미팅이 끝난 뒤 생각을 정리하지만, 그러면 이미 한 발 늦다. 상대방 발언을 들으면서 동시에 머리를 굴려가며 생각하고 그 자리에서 상대방에게 다음 스텝에 대해 즉시 제안이 가능한 정도

 

나는 아직 3개 다 해당되지 않는다. 

 

이렇게 생각하면 나는 정말 타고나길 평범한 조원 1인 건가?

 

과민성 대장증후군으로 회의 내내 처음부터 끝까지 앉아있는 것도 솔직히 힘들다!

더불어 괜히 내성적인 성격 내 성격 탓을 한 번 해본다.

흔히들 회사에는 또 다른 페르소나로 살아간다는데, 나도 '회사용' 페르소나 하나 만들고 가면 쓰고 다니고 싶다.

아무래도 나는 핑곗거리 찾는 거에는 선수인 듯하다.

 

이러쿵저러쿵 머릿속에서 시끄럽게 떠들다가도, 마지막에 역시나 드는 생각은

'아, 나도 일 잘하고 싶다.'

 

나는 언제 승진할 수 있을까? 지금으로선 앞이 까마득해 보이는데. 

누가 와서 '아니야, 너도 일 잘해. 금방 될 거야.'라고 토닥여주면 좋겠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능력이 부족하면서 승진에 욕심내는 자신이 괘씸해 보인다. 

 

이랬다 저랬다, 그렇게 생각만 하다가 오늘 하루가 또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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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 | 한국토종으로 일본 현지 외국계기업에서 인사담당자(HR)로 근무중인 회사원입니다. 외국인의 시선, 인사담당자의 시선으로 보통의 일본생활에 대해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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