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연재글

일본에서 느끼는 요즘 한류의 온도는

푸딩러 2020. 9. 28. 18:34

일본 회사원이 솔직하게 얘기합니다.

 

일본 회사에서 근무하며 나는 내 한국 이름을 고수하고 있다. 그래서 내 이름을 듣거나 보게 되면 내가 일본인이 아니라는 건 누구나 알 수 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나는 아직 내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회사에서 대놓고 차별을 받은 적은 없다.

 

오히려 한국 이름으로 '혹시..?' 하는 궁금증으로 말을 걸어오는 사원들이 많아서 반갑다.

 

BTS를 포함한 한국 아이돌의 인기뿐만 아니라 사랑의 불시착으로 대표되는, 넷플릭스 등으로 쉽게 접하는 한국 드라마가 한류에 다시 불을 지피고 있다는 걸 요즘 더욱 피부로 느낀다. 한류 붐이 돌아왔다는 뉴스가 한국에 나오지 않는 게 신기할 정도.

일본넷플릭스 탑10의 절반이상이 한국드라마

 

 

#1. 어떤 때는 입사를 결심하는 이유가 되기도

올 2월 입사한 F상은 같은 인사과 사원으로, 첫날 회사 소개를 내가 담당하게 됐다. 반나절 간 준비된 내용으로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한 후 마지막에 으레 새로 들어오는 사원들에게 물어볼법한 질문을 던졌다.

 

"F상이 이 회사를 고른 이유는 뭔가요?"

"아, 제가 마지막에 내정(오퍼)을 두 군데에서 받았거든요. 조건은 다른 곳이 더 좋긴 했는데.. 푸딩 씨가 여기 있다는 얘기를 면접 때 듣고 여기로 결정했어요."

 

오잉? 내가 혹시 잊어버린 과거의 지인이라거나, 뭐 그런 건가?

 

"네?"

 

"응칠 시리즈도 그렇고 학생 때부터 한국 드라마 좋아하긴 했는데, 제가 작년부터 방탄소년단에 빠져서.. 한국어 공부도 하고 있고 매달 한 번씩 꼭 한국에 갈 정도로 제가 한국을 진짜 좋아하거든요. 푸딩 씨가 회사 내에서 한국어 레슨도 진행하고 있고 한다고 해서, 친해지고 싶었어요."

 

참고로 F상이 할 수 있는 한국어는 아직 유일하게 한 마디. 응칠에서 나오는 서인국의 명대사 "만나지 마까".

 

 

#2. 태교는 한국어로

세일즈 소속인 M상은 내년 2월 출산 예정. 업무상으로 만나 대화 중이었지만 잠깐 한 템포 쉬어가는 분위기.

 

그때 M상이 갑자기,

"저 그런데, 혹시 푸딩 씨 한국 출신이세요?"

하고 묻는다.

 

처음 만난 사이에 대뜸 출신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다니, 당황스러웠지만 태연한 척 대답했다.

"아, 네. 맞아요.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어요."

 

비록 마스크를 하고 있었지만 M상 얼굴이 미소로 번지는 걸 알 수 있었다.

 

"사실 요새 한국 드라마만 주야장천 보고 있거든요. 자막 없이 보고 싶어서 얼마 전부터 한국어 공부도 시작했어요. 취미 겸 태교인데 너무 재밌어요. 지금은 한글 익히고 있어요."

 

반가운 마음에 어떤 드라마를 보냐고 물으니, 사랑의 불시착은 물론, 그 외 넷플릭스에 있는 한국 드라마를 차례로 섭렵하고 있다고 한다.

 

 

#3. 한국에서 커리어를 쌓고 싶은 계기가 되기도

채용 행사에서 사용할 음향 체크를 하기 위해 오퍼레이션 소속 S상과 만났다.

역시나 첫 대면이었지만 S상이 작업을 하는 도중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음향기기를 잘 다루시다니 멋지시네요"

 

"아니에요~ 그렇게 크게 대단한 일 하는 것도 아니고.. 저는 언젠간 한국어 배워서 한국에서 일하고 싶더라고요. BTS도 그렇고 한국 아이돌 문화를 포함한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대단한 거 같아요."

 

"어 반갑네요. 저 한국 출신이거든요!"

 

"진짜요? 저 그럼 한국어 좀 가르쳐주세요~ 독학하고 있는데 너무 어렵더라고요. 이따가 라인 교환해도 될까요?"

 

10분 정도로 끝난 작업에 대화도 길게 하진 못했지만 라인(일본에서 카카오톡과 같은 존재) 교환까지 속전속결로 진행됐다. 알고 보니 S상은 BTS팬이었고 지민의 매력에 빠져있다고.

 

한국에서 EMS를 받아 회사동료들한테 주기적으로 뿌리곤한다

 

#1~#3까지 모두 대화한 상대는 같은 회사 내 20대 후반 여성. 심지어 #2, #3은 같은 날 있었던 대화다. 전부 담지는 못했지만 신입사원 채용 행사에서 비슷한 대화는 이외에도 두세 번 더 있었다. 참가한 학생들과도 비슷한 대화가 있었다.

 

아직 재택근무가 디폴트지만 가끔 회사에 출근하면 같은 부서 사람들도 말을 걸어온다. 그중 사랑의 불시착은 안 본 사람이 없고, 얼마 전에 본 한국 드라마 이야기부터 드라마에 나오는 한국 문화에 대한 질문들, 드라마에서 자주 나와 외우게 된 한국어 대사 등을 들뜬 표정으로 조잘조잘 얘기해준다. (드라마에서 빠지지 않고 나오는 ‘치맥’을 해보고 싶다는 얘기가 특히 많다)

 

워낙 한국어 가르쳐달라는 주변 회사 동료들이 많아져서 진지하게 한국어 교원 자격증이라도 공부해야 하는 건 아닌가 고민하고 있다.

티브이에서는 BTS, 세븐틴이 음악방송에 나오고 아침 뉴스에선 요즘 도쿄에서 젊은 세대에게 핫한 곳이 하라주쿠에서 신오쿠보(한인타운)로 옮겨 갔다는 보도가 나온다. JYP가 프로듀싱하는 일본 걸그룹 오디션 프로그램은 큰 인기를 끌었고 팬임을 자청하는 연예인들도 많다. 번화가에 나가면 코로나로 다른 음식점들은 아직 썰렁한 곳이 많지만 유독 한국음식점들만은 웨이팅이 있다. 것도 아주 길게.

 

나 개인이 아니라 '우리'나라 문화가 관심을 받고 사랑을 받는 게 이렇게 뿌듯한 일일 줄 몰랐다. 해외에 있으니 그게 얼마나 더 감사하게 느껴지는지. 감사, 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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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 | 한국토종으로 일본 현지 외국계기업에서 인사담당자(HR)로 근무중인 회사원입니다. 외국인의 시선, 인사담당자의 시선으로 보통의 일본생활에 대해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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