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하는 두 번째 이직 -퇴사 통보라는 난관-

https://i-pudding.tistory.com/75

일본에서 하는 두 번째 이직 -오퍼를 받기까지-

대졸 신입으로 입사한 첫 번째 회사에서, 두 번째 회사로 이직할 땐 순조로웠다. 회사에서도 하고 싶은 일을 응원해주는 분위기였고, 사람들도 몇 번이고 송별회를 해주면서 또 만나자고 웃어줬다.

지금에서야 하는 말이지만, 이번엔 퇴사하는 게 정말 쉽지 않았다.

직속 레포트 라인인 상사 A가 있다. A는 50대 중후반, 정년 퇴직을 앞두고 있다. 정년 퇴직을 앞둔 만큼 부하를 키우고 일을 가르쳐주는 거에는 흥미도 소질도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회사원 짬자체가 비교 불가인 대상이여서 업무 이해도나 판단 능력은 대단한데 그만큼 자신감에 넘치는 사람이었다. 너무 넘쳐서 매주 면담할 때마다 부담스러웠다. '내가 없으면 이 부서는 바로 망할 거다', '나만큼 이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등.


A로부터 항상, 내가 이미 윗직급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승진 0순위 사원이라며 연초부터 얘기를 들어왔다.
하지만 승진은 무슨, 반년이 지나도 감감무소식이었다.
그리곤 승진에 대해 물어보면 '진짜 필요로 하는 부하라고 생각된다면 무슨 수를 써서든 승진을 시켜줄테니 자기가 진짜 필요로 하는 부하인지 아닌지 확인해보면 된다'고 유체이탈 화법을 쓰며 영문을 알 수 없는 말만 했다.

그에 대해, 어떻게 확인을 하느냐고 물으니, '퇴사를 하려고 할 때 상사가 붙잡느냐 아니냐의 차이 아니겠냐'는 말을 했다. 퇴사가 그렇게 간단한 얘기도 아니고, 이 사람은 내가 어떻게 하길 원하는 건지 아리쏭했다. 이 대화가 몇 달전의 이야기.

그리고 지금. 오퍼를 받은 직후 10월 6일의 일이다.
언제나처럼 매주 정기 면담을 하는 자리였고, '하고 싶은 말 있냐'는 질문에 '사실은 관두려구요'라고 답했다.

온라인 면담이었는데, 건너편 화면에서 이메일 쓴다고 키보드 타다닥 하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더라. 내 얘기가 진심이 아니라 생각했는지 처음엔 가볍게 흘려듣는 듯했다.

왜 퇴사를 하려고 하는지, 어떤 회사의 오퍼를 받았는지 설명하고 있는데 도중에 말 끊고
'어, 방금 업무 얘기한거 지금 이메일 보내뒀으니까.'
라고 한 뒤 그 때부터 내 얘기를 들어줬다. (이메일 쓰는거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지금보다 더 좋은 대우를 해주는 곳에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의 회사를 찾았다고, 그 외 부수적인 이유를 몇 가지 대며 그래서 퇴사하려고 한다. 고 전했다.

전혀 안 말리더라.

미리 언질도 없이 이렇게 통보하는 거 자체가 이미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는 뜻 아니냐며, 자기는 타인의 인생은 간섭 안하는 주의라서 말리지 않겠다더라. 승진이나 연봉 인상도 자기가 보장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라서 그런 대가를 약속할 수도 없다고. 무엇 하나 제공할 수 있는게 없으니 말리지 않겠다더라.

몇 달전에 얘기한 '상사가 붙잡느냐 아니냐'는 별 생각없이 그냥 한 말이었나,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며, 미적지근한 상사의 반응을 뒤로 하며, 미뤄둔 오퍼 승낙에 대한 답변을 보냈다.

여기까진 순조로워보였는데 고민과 갈등을 거듭한 건 그 뒤의 이야기다.